[태국 여행 3] 옹박과 구렁이가 나를 불렀다 3

일상 속 여행/아시아 / 오세아니아 2009. 5. 8. 11:20
방콕 맛보기 쩝쩝~



새벽에 방콕남부터미널에 뚝 떨어졌다.

비몽사몽간에 택시를 잡아타고 카오산의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또 콜콜~
또 조기 세파타클 청년들의 통통 공놀이 소리에 눈을 뜨니, 어느새 이곳은 방콕!
꼬 사무이에서의 황홀한 기억은 금세 가물가물…
오늘은 방콕을 제대로 맛보리라 다짐하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만
너무 일찍 나선 탓에 문을 연 관광지들이 없어 탄마삿 대학교에서 흐느적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대학 식당이 싸다는 선입관을 증명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지만 허~ 싸지 않다!
‘뭐야 여긴 부자들만 다니는 학교인 건가!’



사실 그렇긴 한 것 같다. -_-; 알고 보니 이 학교 태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학이다!
처음 학교에 들어설 때부터 느낀 건데.. 여학생들의 얼굴이 매우 하얗다.
태국에선 흰 얼굴이 ‘부티’의 상징이라던데..
까무잡잡한 내 얼굴이 상대적으로 어두워 보였다.



음산한 방콕을 원한다면!




자~ 드디어 관광지들이 눈을 뜨는 시간!

학교 근처 식당에서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본격적인 방콕 여행을 나섰다.
그런데 그 첫 목적지는 씨리랏 병원의 법의학 박물관이었다.
갖고 있던 여행 책자에는 그리 비중이 크지 않게 나오는 곳인데,
호러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겐 가장 ‘땡기는’ 곳이었다.
배를 타고, 또 터벅터벅 걸어서 겨우 미국 드라마 <킹덤>과 같이 음삭한 분위기를 풍기는 박물관에 당도했다.



먼저 신관을 돌아봤다.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기형아로 태어난 아이들의 시신들.. -_-;
특히 샴 쌍둥이가 많았는데 샴 쌍둥이가 처음 발견된 곳이 바로 태국이라고 한다.
이렇게 제 명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추모하는 카드들이 많이 있었는데,
‘축하해 줄래? 나의 생일을..’이라고 한글로 쓰인 카드를 보니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다.
또 하나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던 전시물(?)은 ‘법의학 박물관’이라는 타이틀대로
여러 사인(死因)들로 죽어간 시신들의 사진, 그리고 연쇄살인범들의 미이라…였다.
다음은 구관…
뭐 이래저래 신관에 자료를 넘기고 남은 자료들이 쌓여있는 곳이라 할 수 있는데,
이곳이야말로 음침하기 그지없다.
혼자 돌아다니다 보면 먼지를 툭툭 털고 ‘뭔가 이상한 것’이 불쑥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였다.
‘죽음’을 간접적으로 실컷 체험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절로 심호흡을 하게 된다.
‘어푸어푸’ 이렇게 건강히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눈부신 방콕을 원한다면!




다음 목적지는 왓 프랏케오다.

이곳은 우리말로 ‘에메랄드 사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름처럼 참 눈부신 곳이다.
건물들이 금박을 비롯해 온갖 휘황찬란한 장식으로 치장이 되어 있다.
게다가 그 규모나 넓이는 어찌나 거대한지…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보고 또 보면 질리는 법!

이곳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런 반짝이 건물들보다 오히려 태국의 건국 신화를 그려놓은 벽화였다.
그런데 그 규모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음… 한 100권짜리 이야기책을 모조로 그림으로 그려서 쫙 펼쳐놓은 듯한 규모라고 하면 별반 틀린 말이 아닐 듯하다.



방콕의 대표적인 관광지 왓 프랏케오를 느끼는 또 하나의 포인트로
이 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며 태국이 어떻게 탄생된 나라인지를 알아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가만히 벽화를 보다가 우리나라의 건국신화를 이렇게 벽화로 그린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곰, 호랑이, 쑥, 마늘, 동굴, 단군 아저씨… 등등.



자유로운 방콕을 원한다면!



왓 프랏케오와 가까이 있는 왕궁까지 구경을 하고 숙소가 있는 카오산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니 벌써 해는 수면을 벌겋게 달구고 있다. 밤이 오고 있는 것이다.
새벽이면 떠나야 하는데… 얼릉 카오산의 밤거리를 즐겨야지 하는 조급함에
직접 배의 노를 저었다.(설마 그랬을까... -_-)



카오산의 밤거리는 사람으로 넘친다.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니, 밤이 되면 이곳은 무국적 거리고 바뀌어버린다.
예쁜, 혹은 별난 상품을 파는 가게도 많고
간단하게 한 잔, 혹은 낯선 게이쇼를 보며 엉겁결에 한 잔, 그러다 그냥 노상 술집에 앉아 진하게 한 잔을 할 수 있는 곳이 이곳, 카오산 거리다.
카오산 거리를 몇 번이나 왕복하며 가게들과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내가 무척 피곤한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바로 그곳, 맛사지샵으로 직행하면 해결!
약간 기다리다 드디어 차례가 와서 마사지를 받는데
어이쿠, 관절들과 입이 ‘비명’을 합창한다. ‘헉! 뚜둑! 악! 뚝!’
건장한 20대 초반의 청년 마사지사는 나를 아주 분해하려는 듯이 꺾고, 잡아당기고, 눌렀다.
하지만..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 지나 가게를 나오며… 나는 생기발랄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후훗. 자~ 이제 맥주 한 잔으로 태국여행을 마감해 볼까나~
눈에 띄는 한 가게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미 늦은 밤이지만 가게 안은 활기를 띠고 있다.
맥주를 홀짝거리며 며칠 동안 태국에서 머물렀던 시간을 떠올리니
마주쳤던 장소와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들이 힘을 합해
내 마음속에서 그리움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이건 내가 돌아가야 할 곳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내가 곧 이별해야 할 곳에 대한 성급한 그리움이다.
에잇~ 멜랑꼴리한 느낌일랑 집어 던지고 홀짝홀짝!
헉! 결국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기다 허겁지겁 짐을 챙겨 공항으로 떠나야 했다.
이건 낭만적인 결론이 아니잖아!



난 맥주가 물들인 빨간 얼굴로 비행기 차창을 부여잡고 외쳤다.
“나 돌아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