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 살사의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트리니다드 '마요르 광장'

일상 속 여행/남미 2012. 7. 10. 09:06

마요르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본 클래식 자동차. 쿠바에서는 이렇게 잘 관리된 클래식 자동차를 길에 굴러다니는 수준으로 흔하게 볼 수 있다. 나라 전체가 전시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쿠바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여행지다.



마요르 광장으로 가는 이유는 살사 때문.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쿠바 트리니다드는 밤이 되면 마요르 광장 계단에 수많은 사람이 모인다. 그냥 음악을 즐기며 술 한잔을 하고, 그 앞의 무대에서 춤을 추기도 하는데, 분위기가 트리니다드의 하이라이트라고 해서 안 가볼 수가 없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후였지만, 아직 본격적인 무언가는 시작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칵테일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무대 위 밴드들은 분주하게 연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계단에 앉은 사람들. 이곳에서 음악을 듣고 살사를 추는 데는 별다른 비용이 필요 없다. 3-4천 원 정도 하는 칵테일이나 맥주 정도면 오케이. 나 역시도 같이 온 네덜란드 친구와 함께 계단에 자리를 잡고 모히토 한잔을 시켰다. 다른 곳보다 맛은 훨씬 떨어졌지만, 어차피 음료 하나면 더 주문해야 할 필요도 없었기에 음악 듣고, 분위기에 취하는 비용으로는 저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열심히 곡을 연주하는 밴드. 주로 연주하는 곡은 살사였고 가끔 차차를 연주했는데, 내 귀에도 익숙한 다소 오래된 곡 이었다. 빨간 옷을 입은 아저씨가 노래를 불렀는데, 역시 살사에서도 소울이 느껴진다. 음악을 빼놓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쿠바사람들 이어서일까? 밴드 주변으로도 많은 사람이 어깨를 흔들며 분위기를 끌어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1~2곡이 연주된 뒤에 사람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오더니 살사를 추기 시작했다. 주로 쿠바 남자들이 서양인 여자에게 가르쳐주는(그래서 춤추는 것은 허접한) 풍경이 대부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유럽에서 온 것 같은 커플들도 나와서 본격적으로 춤추기 시작했다. 어느 쿠바 커플이 나와서 춤을 추는데 확실히 화려한 게, 잘 춘다는 느낌이었다.

쿠바의 살사는 쿠반살사라는 형태인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추는 온1, 온2와는 다르게 스텝을 약간 대각선 뒤로 빼는 형태였다. 나도 한국에서 2년 정도 췄던 가닥으로 다른 유럽 여자분과 나가서 춤을 춰 봤는데, 스텝도 다소 다르고 패턴도 많이 달랐다. 하지만 기본은 같은 법.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몇 곡을 출 수 있었다.

살사바의 매끈한 플로어가 아닌 돌 바닥이라 턴이 쉽지는 않았지만, 후끈한 열기(어쩌면 그냥 온도가 높아서였는지도..)가 가득한 곳에서 라이브 연주 음악을 들으며 춤추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사람이 화려하게 춤추는 모습을 기대했던 부분은 약간 실망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 나온 마을 사람들. 한번 스텝을 시작하면 웬만한 사람 저리 가라 할만큼의 실력을 보여주는 이들이 몇 명 있었다.


두어 시간여, 한바탕 살사의 시간이 지나가고 밴드가 교체된 뒤에는 조금 빠른 템포의 아프리카풍 음악이 이어졌다. 그쪽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닐까라고 생각은 해보지만, 쿠바에 온 뒤로 살사, 메렝게, 차차, 그리고 레게톤만을 들어온 나로서는 조금 새삼스럽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은 리듬이었지만 라이브여서 그런지 그마저도 흥겹게 느껴졌다.


그 음악과 함께 여러 춤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쯤 해서 살사를 출 수 있는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멋진 공연을 보는 것도 좋지만, 내게는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이 더 간절해서인지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렇게 춤출 수 있는 무대가 매일 열린다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이틀 저녁 동안 이 분위기를 즐겨야겠다고 다짐했다.


돌아가는 길에 본 햄버거 장사. 쿠바에서는 수도인 하바나만 벗어나면 이런 음식 가판점도 보기 어려웠으므로 굉장히 반가웠다. 춤을 춰서일까 허기도 져서 햄버거를 들고 원래 숙소로 돌아갔다. 약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 밤 11시 정도였는데, 전기 사용이 많지 않은 곳이다 보니 드물게 있는 가로등과 집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전부였다. 그리고 조용한 느낌.


다음날, 트리니다드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해가 지면, 당연히 가야 할 곳은 마요르 광장. 가는 길에 호객하는 집에 들러서 만원에 랍스타 두 마리(!)를 먹고, 바로 마요르 광장으로 향했다.


어제와는 다른 밴드가 라이브로 연주하고 있었다. 음악은 역시나 귀에 익숙한 살사 음악들 위주. 이번에도 테이블 자리는 다 차 있어서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번에는 네덜란드 친구 외에도 낮에 함께 투어를 한 독일 친구 2명과 함께 마요르 광장을 찾았다.


이날 마신 녀석은 부까네로(Bucanero)라는 맥주. 아래에 쓰여있는 푸에르데(Fuerte)는 강하다는 의미로, 5.4도의 맥주였는데 쿠바에서 먹었던 맥주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테이블 가득 앉아있는 사람들. 역시 춤이 시작되기 직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날은 분위기가 쉽게 적응이 되어서인지 금방 흥이 올랐다. 같이 온 독일 친구 중 한 명도 살사를 출 줄 알아서 먼저 그녀와 함께 한 곡을 췄다. 역시 스타일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춤을 이어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몇 곡을 추다가 우연히 한국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뜻밖에 대답은 멕시코. 대학을 캘리포니아에서 나왔는데, 그곳에서 처음 살사를 접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오늘이 떠나는 날이라 해서 이야기를 오래 나누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한국어가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그렇게 이틀 밤을 더 마요르 광장을 찾았다. 다른 곳에서는 일찍 잠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밤늦게까지 춤추고 그것도 모자라서 근처의 바로 가서 또 맥주 한잔을 기울였다. 쿠바에 있으면서 가장 열정적으로, 그리고 즐겁게 시간을 보낸 순간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