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여행] 남미 유일의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 '와까치나(Huacachina)'

일상 속 여행/남미 2012. 6. 15. 13:00
잉카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문명의 땅 페루, 그곳에는 마치 신기루 같은 오아시스 마을 '와까치나(Huacachina)'가 있다고 해요.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고 나무도 자란다는군요. 꿈에 그리던 사막에서 스페인어로 '뿌에스따 델 솔'이라고 하는 '석양'을 보게 된 까를로스 님의 트래블다이어리, 함께 보실까요?

글/사진: 까를로스 [유랑방랑명랑]

몇 년 전, 첫 배낭여행이었던 인도 여행을 끝내고 정말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원래 계획보다 히말라야에 더 머물렀고 계획보다 훨씬 남쪽으로 내려간 탓에 인도 여행 막바지쯤 갈 계획이었던 사막에 못 간 것이다. 첫 배낭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낙타를 타고 사막에서 야영하며 쏟아지는 별을 보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것을 못해서 정말 아쉬웠다. 그리고 5년 뒤, 드디어 사막에 가게 됐다. 바로 남미 유일의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 페루 50솔(Sol) 지폐에도 나와 있는 와까치나(Huacachina)다.


삐스꼬에서 몇 시간 버스를 타고 이까(Ica)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와까치나에 도착하자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사막의 모습이었다. 어차피 비수기라 숙소 가격은 비슷비슷할 거 같아서 돌아다니지 않고 한 번에 잡았는데 가격도 저렴했고 주인아저씨도 친절했다.

오후 5시쯤 도착한 나에게 주인아저씨는 높은 곳에서 보면 정말 근사하니 얼른 석양을 보러 가라고 했다. ‘아, 그러냐’는 대답을 하고 남미에 8개월째 있다 보니 이제는 일상 회화 정도는 가능해진 스페인어로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석양스페인어로 뭔지 몰라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아저씨의 대답은 뿌에스따 델 솔(Puesta del sol).

한국어와 비교하면 모음이 몇 개 없는 스페인어답게 역시나 좀 긴 이름이었지만 어감이 마음에 들었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뿌에스따 델 솔, 뿌에스따 델 솔을 중얼거리며 얼른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 멀리 사람들이 사막 정상으로 향하는 것이 보인다. 광활한 대자연이 내 시각을 왜곡해 마치 3D 세상이 아닌 2D 세상으로 보인다. 봉사 활동 기간에 조금 지쳐있던 나는 사막을 보니 기운이 나 사막에 발 딛기가 아닌 담그기를 시작했는데 순간 너무 급하게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보같이 운동화를 신고 온 것이다. 모래는 자비 없이 계속 내 운동화로 스며들어와 할 수 없이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이제 곧 석양을 볼 수 있다는 증거다. 봉사 활동 때 같은 방에 아주 훤칠한 영국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보다 2배는 훤칠해 보인다.

계속 걷다 보니 실수한 건 운동화뿐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계속 모래바람이 불어 카메라가 고장 날지도 모르게 생겼다.이곳에 오기 전 미리 예습해서 사막에선 지퍼백에 카메라를 담아서 다녀야겠다고 생각해뒀는데 덤벙대느라 깜빡했다. 카메라만이 아니고 아이팟 터치가 들어 있는 외투를  그대로 입고 온 탓에 아이팟 터치도 고장 날지도 모르게 생겼다.

운동화를 들고 가다가 내려놓고 주머니에 모래를 뺀 뒤 카메라와 아이팟 터치를 이 주머니 저 주머니에 옮기는 짓을 몇 발자국에 한 번씩 하는 것을 누가 봤으면 깔깔대고 웃었을 거다.


언뜻 보면 고요하고 적막해 보이는 사막이지만 사진을 잘 보면 바람에 날리는 모래들이 보인다.

봉사 활동 기간 중 아프기도 했고, 매일 같이 육체노동을 한 탓에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경사가 높고 발이 푹푹 잠기는 사막을 걷고 있자니 숨이 턱턱 찼다. 그러나 해는 지기 시작했고 꾸물거렸다가는 정상에서 석양을 못 볼 것 같아 잘 쉬어가지도 못했다.


이게 산이었으면 작은 동산에 불과했겠지만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발이 푹푹 담기는 사막인 탓에 정말 까마득하게 높아 보였다.

하루 일정인 곳이라 오늘이 지나면 볼 수 없을 테니 조금 더 힘을 내 올라가다가… 풀썩하고 사막에 누워버렸다. 카메라와 아이팟 터치는 운명에 맡기기로 한 지 이미 오래다. 모래바람이 기계의 틈보다 훨씬 큰 내 구멍들을 간지럽혔지만,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따 밤에 이곳에 와 이렇게 누워 하늘을 보면 별이 쏟아질까?
오늘은 머리만 닿으면 바로 잠들 것 같은 날이라 또 이곳에 나올 수 있을지 자신할 순 없지만 그런 풍경을 상상하니 좀 더 힘이 나 다시 사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높은 곳에 올라오니 사람과 자동차가 사막의 점 같다.


너무 늦장을 부렸는지 아직 조금 더 올라가야 하는데 해가 이미 지기 시작했다. 사막에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니 그렇게 반갑던 사막이 조금 무서워 보인다.


조금 더 힘을 내 정상에 오르니 해가 더 멀리 있다. 사막의 뿌에스따 델 솔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혼자 여행을 오래 하다 보니 이제는 직감할 수 있다. 사진 부탁이라고. 이 친구들은 사진을 찍자마자 굴러도 위험하지 않은 사막이니 성큼성큼 마을까지 내려갔다. 몇십 분 걸려서 올라온 곳인데 내려가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와까치나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원래부터 존재해 온 마을이 아닌 여행자만을 위한 마을이다 보니 집들도 반듯하다. 사방을 둘러봐도 모래뿐인데 오아시스 근처에는 저렇게 나무가 자랄 수도 있나 보다.


이제 석양이 막바지다. 숙소 주인아저씨 말이 맞았다. 사막 위에서 보는 석양은 정말 아름다웠다. 사막 정상에 드러누웠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를 반복했는데 왼쪽을 보니 마을이 하나 더 있었다.


조금 인위적인 와까치나보다 집들도 거칠어 보이고 정말 사막 마을 같다.
저 노란 건물은 학교일까? 이곳 사람들은 어떤 일상을 보낼까?
아쉽게도 이런 것을 모르고 지나가는 여행자가 대부분이고 나 역시도 대체로 그렇다.


이름 모를 사막의 작은 마을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불빛만이 보인다. 더 어두워지면 위험할 것 같아 나도 아까 친구들과 같은 방식으로 사막에 올라올 때보다 배 이상 발을 푹푹 담그며 순식간에 내려갔다. 다행히 카메라와 아이팟 터치도 무사한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곯아떨어진 탓에 사막의 별 하늘은 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즐거웠던 사막에서의 첫날밤은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