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여행] 마야 문명의 흔적, 세 번에 걸쳐 지어진 피라미드 '우슈말'

일상 속 여행/남미 2012. 5. 31. 10:22
여러분은 피라미드를 실제로 본 적 있으신가요? '세계 7대 불가사의'이기도 한 피라미드. 그 옛날 체구도 적었던 고대 사람들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든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요? 처음으로 멕시코에서 피라미드를 본 까를로스님은 몰락한 도시의 황망함과 여행 중 다시 혼자가 된 쓸쓸함이 겹쳐져서, 마냥 신 나지만은 않으셨다고 해요. 그럼, 우리도 마야 문명의 유적이 가득한 멕시코로 함께 가 보실까요?

글/사진: 까를로스 [유랑방랑명랑]

세계 여행을 계획했을 때, 피라미드는 당연히 이집트에서 스핑크스와 함께 보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처음 루트가 아메리카 대륙 종단이었으니 종단 후에 대서양을 건너야 이집트가 있는 북아프리카로 갈 수 있을테고, 당연히 피라미드를 보려면 한참이 지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서양을 건너지 않고도 피라미드를 볼 수 있었다. 난 마야 문명의 유적이 가득한 멕시코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것이다.

대서양을 끼고 있는 유카탄(ucatán) 주와 유명 휴양지인 칸쿤(Cancún)이 있는 킨타나 로(Quintana roo) 주에는 마야 유적이 많다. 킨타나 로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치첸이트사(Chichén Itzá) 가 있고 거기에는 피라미드가 있다. 그러나 치첸이트사도 내 첫 번째 피라미드가 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유명하디 유명한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치첸이트사를 제치고 내 첫 번째 피라미드가 된 곳은 바로 우슈말(Uxmal)이다.

‘세 번에 걸쳐 지어짐’ 이란 뜻인 우슈말은 유카탄 주의 주도 메리다(Mérida) 에서 버스로 1시간 10분 거리에 있다. 메리다는 세계적으로 혼란스럽던 대한 제국 시절,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이주민이 정착했던 곳인데, 이들은 에네껜(Henequen)이라고 불린다. 메리다 시립 박물관에는 이 에네껜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실제의 역사와 역사적 실존 인물에 가상의 이주민들이 섞여 있는 김영하 작가의 유명 소설 '검은 꽃'에는 이 에네껜에 대해 다루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셨으면 한다.

칸쿤에서 친구들에게 조금 배운 스페인어로 우쭐했던 나는 메리다 버스 터미널에서 말이 잘 통하지 않아 곤란을 겪었지만, 어찌어찌 버스를 타고 우슈말에 도착했다. 우슈말에 입장하니 거대한 마법사의 피라미드(Templo Del Advino) 가 그 풍채를 뽐내고 있었다.

[멕시코 여행] 마야 문명의 흔적, 세 번에 걸쳐 지어진 피라미드 '우슈말'

거대한 마법사의 피라미드(Templo Del Advino)


3세기쯤 지어지고 7~10세기에 전성기를 누리다 13세기에 버려진 이 마야족의 도시는 8세기가 지났음에도 굳건해 보였다. 잠시 내 최초의 피라미드를 멍하니 바라보다 정상에서는 어떤 풍경이 보일지 궁금해 올라가 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몇 년 전부터 계단을 오르는 건 금지됐다고 한다.

[멕시코 여행] 마야 문명의 흔적, 세 번에 걸쳐 지어진 피라미드 '우슈말'

[멕시코 여행] 마야 문명의 흔적, 세 번에 걸쳐 지어진 피라미드 '우슈말'

마법사의 피라미드를 지나 안으로 들어오니 사각형의 뜰이 있었고 그 안에는 4개의 건물이 있었다. 긴 세월에도 굳건해 보이던 마법사의 피라미드에 비해 이 건물들에선 오랫동안 버려진 도시의 황량함이 느껴졌다.

[멕시코 여행] 마야 문명의 흔적, 세 번에 걸쳐 지어진 피라미드 '우슈말'

저 머리는 어떻게 사라졌을까?
몰락한 도시의 황망함이 느껴지자 갑자기 나보고 정착을 권유하던 칸쿤의 친구들이 생각났고 다시금 또 혼자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자와 혼자가 아닌 일이 짧은 주기로 반복되는 게 장기 여행의 묘미지만 막 혼자가 됐을 때 느껴지는 쓸쓸함은 어쩔 수 없달까 :)

주변에는 조금 비싼 돈을 내고 가이드를 데려온 단체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가이드가 워낙 큰 소리로 말해 내용을 다 들을 수 있었다. 이 건물은 무엇이고, 뭘 했던 곳이고, 역사적 사실은 이렇다고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 훔쳐 들을 수도 있었지만 나중에 궁금해지면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로 하고 그냥 유적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을 느끼며 여유롭게 돌아다니기로 했다.

[멕시코 여행] 마야 문명의 흔적, 세 번에 걸쳐 지어진 피라미드 '우슈말'

대피라미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마법사의 피라미드가 다른 각도로 보였다. 그 옛날에 나무 2배쯤 되는 높이로 저렇게 튼튼하게 돌을 쌓아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조금 더 걸으니 단체 관광객이 아닌 친구들끼리 우슈말에 온 무리가 있었다.

[멕시코 여행] 마야 문명의 흔적, 세 번에 걸쳐 지어진 피라미드 '우슈말'

바위 색과 같아 언뜻 보면 찾기 힘들지만 잘 보면 꽤 여러 마리의 이구아나 친구들이 있다. 마야족이 떠난 이후에도 이구아나들은 이곳에서 대대손손 살아왔으려나?

[멕시코 여행] 마야 문명의 흔적, 세 번에 걸쳐 지어진 피라미드 '우슈말'

바위와 구별이 힘든 이구아나


사람을 그다지 겁내지 않아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멕시코 여행] 마야 문명의 흔적, 세 번에 걸쳐 지어진 피라미드 '우슈말'

이구아나 친구들과 작별하고 총독관 건물에 오르니 정글에 둘러싸여 있는 우슈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소설 '검은 꽃'에서 멕시코 혁명 이후, 조선에서 온 이주민들은 역시 마야 유적이 많은 나라인 과테말라의 혁명군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참전한다. 나라 잃은 설움에 시달리던 에네껜들은 몇십 명이서 유적을 끼고 있는 과테말라의 어느 정글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웠는데 그 장면이 오버랩되는 풍경이었다.

[멕시코 여행] 마야 문명의 흔적, 세 번에 걸쳐 지어진 피라미드 '우슈말'

대피라미드


총독관 옆에는 대피라미드가 있는데 ‘대’라는 말이 붙어있어 마법사의 피라미드보다 더 큰 피라미드를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아 조금 실망했다. 그래도 마법사의 피라미드는 계단을 오를 수 없었지만, 대피라미드는 가능해 계단을 하나씩 오르기 시작했다.

[멕시코 여행] 마야 문명의 흔적, 세 번에 걸쳐 지어진 피라미드 '우슈말'

경사가 가파른 덕분에 이런 재미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원주민과 스페인인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인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멕시코는 언뜻 보기에 평균 신장이 한국보다 작아 보이고 원주민은 더 왜소하다. 천 년도 더 전에 이 원주민들의 키는 더 작았을 텐데 이렇게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만든 건 피라미드를 보다 높이 쌓아올리려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멕시코 여행] 마야 문명의 흔적, 세 번에 걸쳐 지어진 피라미드 '우슈말'

대피라미드에 오르니 아까 총독관에서 봤던 풍경의 스케일이 더 커졌고 옆으로 눈을 돌리니 유적 하나가 혼자 떨어진 곳에 있었다. 대피라미드 꼭대기에서 거대한 유적과 훨씬 더 거대한 정글을 내려다봤다. 물도 다 떨어져 가는데 다행히 바람이 불어 시원하고 여유롭게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곳이 실제 도시였던 때는 선택된 자들만 이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을까?

[멕시코 여행] 마야 문명의 흔적, 세 번에 걸쳐 지어진 피라미드 '우슈말'

대피라미드에서 한참을 쉬다 내려와 혼자 동떨어져 있던 유적으로 가봤다. 가이드와 함께라면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 바로 설명을 해줬겠지만 혼자 있으니 그저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하다. 유적 뒤쪽으로는 숲 속으로 작은 길이 나 있어 들어가 봤다. 그러나 몇 분을 가도 별다른 곳은 나오지 않았고 길을 잃을까 봐 살짝 겁이나 다시 되돌아왔다. 아직 스페인어도 거의 못하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니 이런 작은 모험은 ‘언젠가 또다시’ 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나는 다시 입구로 돌아와 유적지 안에 있는 비싼 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 버스를 타고 다시 메리다로 돌아왔다. 내 인생 최초의 피라미드를 봤으나 신 났다고만 할 수는 없는 날이었다. 몰락한 도시의 황망함과 다시 혼자가 된 내 쓸쓸함이 겹쳐져 있는 날이었으니까. 하지만 정글 안에서 긴 세월에도 굳건히 그곳을 지키고 있던 우슈말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