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길상사, 고요하고 애틋한 풍경

일상 속 여행 2010. 11. 22. 14:33


지난 봄, 지인이 블로그에 올린 길상사 연등 사진을 보고 아, 나도 꼭 가봐야지 했었는데… 봄이 다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도록 길상사에 가보지 못했어요.

그러던 지난 주말! 일요일에 놀지 않으면 어쩐지 억울한(…) 직장인의 마인드로 계획도 없이 친구를 만나서 어디 갈까 고민하다가 우연찮게 길상사로 가게 되었어요. 드디어 가 보는구나~ 하면서 발걸음도 가볍게. :D 다행히 일요일엔 날씨가 많이 풀려서 가볍게 걷기에 춥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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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의 으리으리한(…) 주택가 사이로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거짓말처럼 고요하게 깃들어 있는 길상사가 모습을 나타낸답니다. 이곳에 어떻게 이런 절이 있나 싶어 눈앞에 두고서도 주위를 몇 번이나 다시 둘러보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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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없이 고즈넉한 이 풍경이 예전에는 고급 요정이었다는 사실, 아시나요?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고급 요정이었으나, 요정의 주인이었던 고 김영한씨가 법정 스님께 시주하여 ‘길상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해요. 당시 대원각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서울의 3대 요정으로 꼽힐 만큼 화려하게 번영했다고 하네요. 법정 스님께 대원각을 청정한 불도량으로 만들어 달라 청했던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씨는 천재 시인 백석의 연인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가난에 시달리다 결국 열여섯 나이에 기생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그 아름다움으로 이름을 날리던 어느 날 그녀는 ‘백기행’이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가 바로 천재 시인이라 불리던 백석이었어요.

두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지만 시인 백석 집안의 반대에 부딪쳐 끝내 헤어지고 만답니다. 널리 알려진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원치 않는 이별을 했던 당시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해요. (학창시절 배운 이 시에 이런 배경이 담겨 있는지 몰랐어요! *_*)

이후 김영한은 대원각의 주인이 되어 당대의 부를 누리지만, 매년 7월 1일 백석의 생일날이 돌아오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그를 기렸다고 하네요. 시인 백석의 시적 업적과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백석 문학상’ 역시 그녀가 제정해 지속적으로 후원한 것이라고 해요.

그녀가 당시 시가 천억 원에 달하던 대원각을 시주하겠다고 했을 때 법정 스님은 사실 이를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결심에는 흔들림이 없었고, 10년 동안 계속된 그녀의 청에 마음이 움직인 법정스님은 결국 1995년 그 뜻을 받아들여 길상사를 개원 하시게 됩니다.

‘길상화’라는 법명을 얻은 김영한은 이후 그 큰 돈을 기부한 것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하네요. 그 돈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합니다. (…) 백석의 시를 읽는 것은 생의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저에게 그의 시는 쓸쓸한 적막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수였습니다
.”

1999년 세상을 떠난 김영한은 한 줌의 재가 되어 길상사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모른 채 갔더라면 그저 고요한 사찰의 풍경을 즐기고만 왔을 텐데, 이곳에 곤히 잠들어 있는 이야기를 알고 가니까

왠지 더 애틋한 기분이 들었어요. 여러분도 나무들이 그 고운 잎을 다 떨구기 전에 길상사에 한 번 들러보시길!
고요하고도 애틋한 풍경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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