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어릴적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일본 후쿠오카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의사 생활을 하셨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일본 시골 마을에서 보내고 오곤 했다.
비가 오는 날 장화를 신고 우산을 쓰고 도랑에 나가 첨벙첨벙 냇물에서 혼자 우렁이를 잡으며 뛰뛰어놀 때면 지나가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한국의사선생님의 손녀에게 반갑게 인사해주며 말을 건네지만 어린 나이에 웬지 무서워 재빠르게 집으로 돌아오곤했다.
구구단을 외워야지만 풀장에서 수영을 할 수 있었기에 더운 한 낮에는 열심히 구구단을 외우고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시간에서야 풀장에 퐁당 뛰어 들 수 있었다. 오후 4시면 시작하는 무슨 말인지도 못알아듣는 어린이 프로그램에 환상을 하고, 비가 오던 날 방영한 공포영화에 몇날 며칠을 잠 못이루며 엄마를 찾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동문시스템이 시골 작은 마을 가게에도 있는 것이 신기하여 문앞을 계속 왔다갔다하며 장난 치다 꾸지람을 들었다. 내리기 전 벨을 누르면 다음 정거장에 세워주는 버스가 신기해서 몰래 벨을 눌러보기도 했고 고속열차 신칸센을 타고 도쿄를 갔을 때의 흥분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새벽 6시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
동이 뜨기 직전의 하네다 공항은 온통 짙은 푸르름으로 뒤덮혀있다. 일본까지 오는데는 물론 얼마 걸리지 않지만 마음으로는 늘 멀고 먼 곳이다. 일본, 가깝고도 먼 나라.
드디어 새벽에 작고 작은 공항이라 부르기에 조금은 많이 창피한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환율이 가장 최악일 때 최악의 몸상태로 도착한 도쿄에서 일단 좀 씻어야겠다.

밤을 꼴딱 새고 도착한 바람에 아침 바람이 무지 차갑게 느껴진다. 제 1 터미널과 제 2 터미널 그리고 국제공항을 계속 도는 공항버스를 타고 제 2터미널에서 내려 모노레일을 타고 도쿄 중심지로 이동한다. 공항버스는 물론 착하게도 무료이고 친절하게도 한국 안내 방송이 나온다.

토요일, 이른 아침 그래도 사람들이 보인다. 일본인구대비로 따져보자면 개미 똥만한 숫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낯선 땅에서 현지인들을 만난다는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니까.
일본어로 나누는 대화들이 내 귀를 간질간질 간지럽힌다. 알아듣지 못하는게 더 좋은 이유는 음율을 느끼며 상상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교통비가 어마어마하게 비싼 도쿄 여행에서 살아남는 길이란 튼튼한 두 다리로 열심히 걷거나 지하철 한 노선만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2일 동안 왕복 모노레일과 JR 노선을 횟수에 상관없이 탈 수 있는 Free Ticket을 2천엔을 주고 복잡하고
어려운 티켓 기계를 이용해서 구입한다. JR Free Ticket과 왕복 모노레일 Ticket을 받지만 표가…………..
좀 많이 허접스러움에 실망하지만 잃어버리면 큰일 나기에 지갑 깊숙이 고이고이 간직한다.

제2터미널과 JR 노선 하마마츄쵸를 연결하는 모노레일은 정확히 도착시간에 오고 정확히 출발 시간에 출발하는 지극히 일본스러운 열차였다. 분명 오래된 모노레일이지만 열차안의 낙서도 보이지 않고 낡은 좌석도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는 일본다운 일본스러움이 엿보인다.

어젯밤 내린 비로 춥기는 하지만 하늘은 그 어느 봄날보다 청명한 날씨다.
아직도 내가 이 곳 도쿄에 있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일까.

꼭 태국의 맑은 날과 흡사하지만 분위기는 완전 상반된 모습의 하마마츄쵸로 가는 길.
사실 나는 골목을 거닐고 싶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일본 소도시를 걷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이 바삐 오게 된 도쿄여행에 욕심을 부리지 말자하고 책자를 따라 도쿄 구경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상쾌한 도쿄의 아침만큼 입안에 상쾌함을 가득 안겨준 실은 한 모금 마시고 레몬을 통째로 짜 넣은거 같은 신 맛에 몸서리를 치고는 비싼 가격에 차마 버리지도 못하고 꽤 오랜시간 들고 다니며 한 모금 마시고 몸을 부르르 떨고 한 모금 마시고 몸을 부를 떠는 걸 반복한 끝에 겨우 다 마셨던 레몬음료수로 정신을 잃을 뻔한 피곤함을 순간순간 날려주었다.
JR을 찾는건 쉬웠다. 우리나라 2호선이랑 비슷할 뿐 아니라 친절하게 한글까지 적혀있다, ”남쪽입구”. 도쿄에서 와서 낯설거나 새로운 곳에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건 바로 이런 모습들 때문이였다. 어딘가 모르게 서울과 닮아있는 도쿄.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환승역인 하마마츄쵸는 환승역이라서인지 이른 아침에도 등교하는 학생,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붐빈다. 일본 지하철은 노선도만 봐도 어지럽고 실제로 환승이라도 할라치면 자칫하면 지하도안에서 미아가 되기 딱 쉽상이다.
답답한 지하가 아니라 밖이 보이는 플랫폼에는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들어오고 있다. 잠도 못자고 배고 고프고 햇살은 따뜻하고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거지된 느낌이지만 정신만은 차리자며 얼굴을 살짝 살짝 때려줘 본다. 20개가 넘는 노선이 있는 동경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보는 순간 그 복작함 때문에 머리는 어지럽어 토나올 것 같아 얼른 덮어버리고 조용히 지하철을 기다린다.
드디어 신주쿠로 갈 JR 열차가 도착.
신주쿠에 가면 일본스러움을 많이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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