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인형_나도 당신의 바람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일상 속 여행 2010. 4. 8. 02:54



너무나 기다렸던 영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놓친 이후, 개봉날짜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일본에서 DVD까지 발매되었단 소식에 그냥 DVD를 질러버려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던 영화.
너무나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들이 나오는, 기대치 120% 영화 <공기인형> 을 드 디 어! 보았다. 아아, 감격-

<환상의 빛>,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 <디스턴스>(국내 미개봉작), <하나>,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만든 영화들은 단 한번도 내 기대를 어긋난 적이 없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현실과 환상, 그 경계선 상에서 아름답게 조율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매력적인 배우들을 만나 담담하고 고요하게 관객에게 스며든다. <공기인형> 역시 그런 감독의 특성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영화였다.




성적대용품인 공기인형 노조미. 어느 날, 마음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빗방울, 공기와 바람, 빛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여행은 사람들이 가지는 '감정'에 까지 이르게 된다. 비디오 렌탈 가게의 준이치를 만나면서부터. 




설레이고 아름다운 일상, 함께하는 시간들의 벅찬 감정들. 준이치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배워가는 세상과 사람의 마음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언제나 행복하지 않고, 즐거운 시간만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사람의 '마음' 을 가지게 된 노조미에게는 하나의 마음이 아닌 여러개의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노조미가 만나게 되는 세상의 이야기들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공터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이런 시를 알고 있느냐며 알려주었던 이야기. 기억에 남아있는 대로 옮겨보자면,

생명은 자기자신만으로 존재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꽃도 바람과 곤충이 있어야 수정이 되어 꽃을 피울 수 있다.
생명은 각자 빈 공간을 가지고 있고 그 공간은 다른 존재들만이 채울 수 있다.
...
나도 누군가를 위한 곤충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당신도 언젠가는 나를 위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 그리고 이 이야기는 수 많은 영화들을 만들어냈다.(얼마전에 포스팅한 '인 디 에어' 에서도 나오듯이) 하지만 여태껏 이렇게 공감되는 이야기로 표현한 영화는 처음이랄까.
나도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바람, 누군가의 곤충, 누군가의 공간을 채우는 존재가 되고 또 내가 아닌 타인이 나에게 그렇게 되어야만 이루어지는 인간들의 세상. 쓸쓸하고, 아름답다. 흑.




세상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 궁금한 것이 많아지는 노조미는 자신을 만든 소노다를 찾아간다.
왜 자신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에게 물어보지만 소노다도 대답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노다의 질문에 노조미는 대답한다.

"마음을 가지지 않는 편이 나았어?"
"아니."
"네가 본 세상은 슬프기만 했니? 혹시 아름답고 즐거운 건 없었어?"
"있었어."

슬픈 일도 있지만 즐거운 일도 있는 사람들의 삶.
공기인형 노조미는 사람의 마음을 가진 짧은 시간 동안 그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절반 쯤은 쓸쓸한 엔딩을 보며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지난 내 인생동안 만나왔던 사람들과, 나의 지나가버린 시간들과, 앞으로의 시간들-
응,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라고 마음 먹게 해준 영화.

잘봤습니다!!!



덧붙임>
솔직히 말하자면, 배두나의 캐스팅이 염려되기도 했다. 그녀가 여태껏 보여주었던 캐릭터와 한국인의 필터링을 거치게 될 일본어 대사 등이 살짝 불안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의 캐릭터와 연기를 흠잡고 있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배우 배두나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 되었다고나 할까.

언제나 감정을 스트레이트하게 표현하는, 세상의 주류에서 살짝 비켜나있는 듯한 성격, 그리고 툭툭 던지듯이 내뱉는 대사로 이루어진, 감독들이 혹은 관객들이 배우 배두나에게 바라는 일관적인 캐릭터들. 나 역시 배두나를 좋아하긴 하지만 항상 비슷한 연기를 보여주는 듯 해서 아쉬웠었다.

하지만 <공기인형>에서의 노조미는 '인형'이었기 때문에 감정과 대사의 표현이 살짝 자제되어야 했고, 배두나는 그것을 훌륭하게 소화한 것 처럼 보인다. 일본어 연기가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 된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결론은 좋았다는 거.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