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친구 견식 아저씨 이야기

일상 속 여행 2010. 1. 31. 22:22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 날, ‘그런 날’이 오고 말았다.

친구가 결혼하는 날, 여우비가 오는 날, 환율이 곤두박질 치는 날, 새 옷에 커피를 쏟은 날 등등 ‘그런 날’을 수도 없이 많지만, 이번에는 바로 이런 ‘그런 날’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었는데, 누구 하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지 못하고, 뭐 껀수가 없을까 하는 눈치를 주위 사람들에게 은근히 쏘아대는...

먼저 나와 쟈니 매니저님의 눈빛이 조화를 이뤘고, 저 어딘가서 비슷한 느낌의 눈빛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고 있었다. (더 이상 필요 없는데) 바로 팀장님의 눈빛. 흑.

뭐 그래, 지갑도 다이어트 중인지라 팀장님과 함께라면 계산대가 두렵지 않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팀장님의 눈빛마저 접수해, ‘저녁에 별 볼 일 없는 멤버’가 된 우리 셋은 거리로 나섰다.

우선 영화를 한 편 보고, (영화 : 여배우들, 감상평 : 웃겼다)
종로의 조그만 주점에 들러 따끈한 국물에 시원한 맥주라는 좀 어이없는 조합으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먼저 쟈니 매니저님이 입을 열었다.

  "노민아 나 군대, 아니 다른 팀으로 간다! 로밍 팀을 잘 부탁해~"

급 우울해졌다. 지난 1년 간 쟈니 매니저님과 엮일 수 있는 썸띵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렇게도 노력했건만... 팀을 옮기신다니. 매년 초에는 팀이동으로 어수선해지는 게 사실이고, 특히나 우리 회사는 한 팀에서 3년을 보내면 의무적으로 팀을 옮겨야 한다. 그래서 1월은 슬픈 달...

뭔가 한없이 추락하는 분위기를 감지한 팀장님이 난데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노민, 자네는 친구가 많나?"

  "예. 춘자, 말자, 성자 등등 말하고 나니 '자'자 돌림 친구들 뿐이네요."

  "나도 친구가 득실한데 내 친구 얘기 하나 해줄게."

이렇게 시작된 팀장님의 친구 이야기는 아주 기~일게 이어졌다.

  "내 친구는 태식, 광식, 훈식 등등 '식'자 돌림 친구가 많아."

  "앗 팀장님, 팀장님 친구분들과 제 친구들 이름을 조합하면 '자식'이 되네요!"

  "... 여튼! 대부분 고향 친구들이야. 중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친구들이지.
   그 개구진 녀석들이 그래도 공부는 잘 해서 지금은 다 잘 나가고 있어." (뭐야 이 자랑질 분위기는...)

  "그 친구들 중에 사람은 너무 좋은데, 공부와는 담 쌓고 지내던 애가 있었지.
   그래도 우리랑은 곧잘 어울려서 지금도 모임을 하면 자주 나와서 웃겨주는 친구지.
   그 친구의 직업은 개를 키우는 일이야. 이름은 견식."

  "애완용 강아지 키우는 분인가요? 아 좋겠다. 저도 그 친구분 집에 가보고 싶어요."

  "애완용도 키우지만 조금 다른 용도의 강아지를 키우기도 해."

  "아... (꿀꺽)"

  "작년 여름이었나? 고향에서 친구들 모임이 있었어. 한창 땡볕이 내리쬐던 힘든 날이었지만,
   그래도 그 바쁜 친구들이 대부분 참석의사를 밝혔지. 다 해서 열댓명이 됐을 거야.
   모임 장소는 견식이 그 친구가 정했어. 아직 고향에 머무르는 친구는 그 친구밖에 없거든.
   그 친구가 알려준 위치를 내비에 찍고 가니 종착지로 어느 다리 밑이 나오더군.

   어느덧 친구들이 하나 둘 모였는데 좀 어리둥절했지. 여기서 무슨 모임을 한다는 건지.
   그러고 있는데 멀리서 개 짓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소리나는 곳을 보니 개 두 마리가 다리 기둥에 묶여있었어.
   그리고 그 옆에 종이 한 장이 돌멩이로 눌려있었어.

   내 불황이라, 회비를 내기가 좀 힘든 상황이네. 이 두 놈이 내 회비니 알아서 하게. 같이 하지 못해 안타깝누만.  
   – 자네들의 건강한 여름을 기원하며, 영원한 친구 犬食이가...

  다시 보니 두 마리 다 튼실허니, 친구들을 생각하는 견식이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더군."

  "아, 훈훈하면서도 그 뒤의 일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뭉클한 이야기네요."

  "어쨌든 그 해 여름은 그 친구 덕분에 든든히 보낼 수 있었지."

옆을 보니 쟈니 매니저님이 눈물 한 방울을 떨구고 있었다.

  "팀장님 너무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왠지 로밍 팀을 떠나는 게 더욱 슬퍼지려 해요."

  "흠... 쟈니 자네는 걱정할 필요 없네. 내가 알아봤는데, 팀을 옮겨도 자넨 노민 옆이야.
   둘의 경계는 겨우 3cm짜리 파티션 한 장뿐."

그렇게, 안도감과 허탈함이 교차하는 겨울밤은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