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남프랑스 여행 24_고흐의 밤의 카페 (Cafe la Nuit)

일상 속 여행/유럽 2009. 12. 31. 13:29

아를의 밤의 카페는 맛으로 입소문이 난 곳이 아니라 고흐 때문에 유명해진 곳이기 때문에
잠시 들러 차나 한잔 마시려고 했는데, 시간을 잊고 돌아다닌 통에 점심 때를 한참 놓친데다
그림과 같은 노란색에 홀려 카페를 발견한 순간 그만 자리를 잡고 말았다.



카페의 진짜 이름은 'Cafe la Nuit (밤의 카페)' 이지만, 반 고흐 카페로 더 유명하다.
아를의 노란집에 들어가기 전 고흐가 잠시 방을 얻어 살던 곳도 '밤의 카페' 인데, 여긴 그 밤의 카페는 아니다.
점심 때가 지난 시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했다.




나는 고흐 그림의 왼쪽 첫번째 문 옆, 두번째 자리 쯤에 자리를 잡았다.
누군가 날 그림과 같은 구도로 찍어 줬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동행인이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메뉴판도 짐작했던 바 처럼 고흐의 그림으로.



구운 파프리카와 가지로 만든 샐러드

맛은 예상했던 대로 허기를 겨우 때울 만한 정도였지만,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지는 않으니 용서해 주기로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었지만,
오래 앉아 있어도 종업원들이 눈치를 주지 않는다는 것.
식사를 마친 뒤에도 한참 동안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신문을 읽는 등 여유를 부릴 수 있어 좋다.
사실 프랑스의 어느 카페나 그렇다.


 

메인요리는 종업원이 추천해 준 것으로 했는데, 간이 전혀 안된 장조림 덮밥이 나왔다.
냄새도 나고 양도 많고 맛도 없고 심지어는 극심한 허기까지도 앗아 간 재주많은 요리.


 

그래서, 바로 치워달라고 하고 오다가 산 밤의 카페 테라스 엽서에 편지를 썼다.
"그림 속 장소가 존재하는게 신기하긴 한데... 맛은 없어요."


 

코스 중 가장 맛있었던 노란 애플 타르트.

이 카페는 역시 별이 가장 아름답다는 9월 밤에 사랑하는 이와 별 보며 차 마시면 좋았을 곳이었다.
사랑하는 이도 없고 해 떨어지기 전에 아비뇽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에겐 아쉽기만 했던 곳.
그러나 고흐를 호흡할 수 있었으니 그걸로 만족 하기로.

 

북적대는 바깥과는 달리 내부는 텅텅 비어 있었고, 분위기도 많이 틀리다.
2층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길에 클래식한 실내 구경을 겸했다.


 

피아노가 있는 것으로 보아 늦은 밤엔 음악 연주도 하는 모양이다.
쿵짝쿵짝 촐싹맞은 피아노 소리, 시끌벅적한 사람들, 자욱한 담배연기,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
적막한 밤의 카페 안에서 '부랑자들의 밤' 을 상상해 본다.


 

늘 그렇듯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큰 명소 답사였지만,
카페 한 구석에 앉아 스스로 고흐 그림 속 풍경이 되어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기억이었다. 

@ Cafe la Nuit, Ar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