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남프랑스 여행 23_Good morning or Hello, 아를

일상 속 여행/유럽 2009. 12. 30. 22:30

아비뇽에서 머물며 하루는 아를에 갔다.
아를에서 가장 높이 있다는 원형경기장의 아침은 무척 고요했다.
사람의 관심에서 벗어난 나이 든 인기스타처럼. 

나는 로마시대에 지어 진 원형경기장은 처음인데다 운이 좋으면 동그란 경기장 한 복판에서
혼자 크게 소리를 질러 경기장 안에 퍼지고 또 고이는 소리의 울림을 들을 수 있겠다는 괴상한 기대 때문에
만만치 않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60개의 아치, 2층의 아케이드 구조로 되어 있는 이 곳은
처음 지었을 당시엔 무사들의 싸움으로 피비린내가 진동했겠지만, 요즘엔 투우경기가 열린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처럼 단계 별로 창을 바꿔가며 소를 죽이고 마는 그런 경기는 아니고,
소의 목에 걸린 리본을 뺏는 정도의 평화로운 싸움. 

몇 세기가 지나도록 '원형 경기장'이 보존되어 처음의 그 용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기초 공사를 잘 한 조상들과 유지보수를 잘 한 후예들의 아름다운 합작품인 것이다.



'다행히' 경기장 안으로 진입은 불가했고, 잠시 객석에 앉아 텅 빈 경기장을 내려다 봤다.
곧 어느 문에선가 튼실한 네 다리를 가진 검정 투우가 돌진하며 노란 흙먼지를 날릴 것 같아
몸에 붙어 있는 빨간색 물건들을 잠시 가려 본다.




'이 모든 것이 로마시대 때 지어진 것이구나! ' 라는 감동은 1분이면 족하다.
아무것도 볼 것없는 비시즌의 원형경기장에서 본전 생각에 머뭇거릴 '쪼잔한' 여행객을 위해
특별한 선물이 경기장 꼭대기에 준비되어 있었다. 

바로 아를을 조망하는 것.

 



갈색 지붕에 알록달록 창문으로 나름의 매력을 드러낸 아름다운 아를 풍경.
바람에 펄럭이는 하얀 빨래와 차양이 드리워진 노천카페의 파란 창문과
창가에 소박하게 고개를 내민 허브 화분과 호수같이 멈춰있는 론강. 

아름다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예술가가 되는가 보다.
아름다운 아를에게, 그리고 그 곳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첫인사를 던진다. 

Good morning or Hello, you!


문을 빠져나오는 길 입구에 세워져 있는 고흐의 그림 속 경기장은 무척 활기차다.
고독한 그가 소란스런 군중 속에 있었다는 것이 왠지 어색하지만,
아마도 아를에서라면 그도 조금은 덜 고독했을 것 같다. 

@ Ar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