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남프랑스 여행 20_강한 사람들은 모두 니스로!

일상 속 여행/유럽 2009. 12. 21. 10:54

니스에 도착했을 때 감지된 기묘한 축제 분위기가 마음을 더욱 들뜨게 했고,
유럽 휴양지 분위기란게 이런 것이군! 하고 생각 했었는데, 곧 원인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호텔에서 해안가 영국인의 산책로를 걷다 보니 중간쯤 되는 지점부터 2차선 도로를 막고,
팬스를 친 안팍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 뭔가를 하고 있었다. 

건장한 사람들의 폼새와 엄청난 수의 자전거들로 보아 무슨 경기를 하는 것 같긴한데.
뭐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나 처럼 팬스 밖에서 안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던 아줌마를 붙들고 물었더니,
내일 큰 규모의 철인삼종 경기가 열린다는 것. 아줌마의 신랑이 출전을 해서 응원을 나왔다고 했다. 

오! 

선수들은 다리에 번호를 그리고, 지정된 위치에 경기복과 자전거를 놓는 등 경기 전날 준비로 바쁜 모습이었다.
출전번호와 성별, 나이를 다리에 매직으로 써 주던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응급상황에서 등번호가 떨어져도 바로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인 것으로 추정해 본다. 

왼쪽 다리 옆이 출전번호, 오른쪽 다리 뒤가 성별 (M 남, F 여)과 나이.




자전거를 세워 두고 기념촬영 하는 선수의 모습이 비장해 보였다.
경기는 새벽 6시 30분 부터 시작해서 밤 12시까지 계속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날 철인들의 Start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잠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출발선으로 갔다.

 

이미 출발선 근처엔 발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모여있는 사람들은 관광객보다는 선수와 그의 지인들, 기자단이 대부분이 었고,
그것으로 이 대회가 얼마나 큰 규모인지 짐작할 만 했다. 

게다가 엄청나게 거대한 스피커에서 비트강한 음악을 최대 볼륨으로 틀어 대고,
그 음악에 맞춰 시작 전 흥을 돋구는 사회자의 하이톤 목소리에 - 비록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
나도 모르게 심장과 몸은 제멋대로 춤을 추고 있었다.





3.8 km Swim, 180 km Bike, 42.2 km Run!

5 km 마라톤도 힘들었던 나로서는 그 숫자들만 봐도 숨이 막힐 듯 했지만,
출발선을 향하는 선수들의 얼굴엔 여유가 넘쳐났다. 




그리고, 구릿빛 근육과 강렬한 타투.
아! 멋진 Ironman 들의 축제. 
물론 Ironman 의 Man 은 男 이 아니였다.
수많은 남자들 틈에 간간히 눈에 띄는 여성출전자들도 소수여서 인지 더욱 멋져 보였다.




바다에 몸도 미리 담궈 보고 가벼운 준비 운동 후 수영 출발선에 대기 중이 출전자들.
내가 사진을 찍던 곳이 기자단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사진기 내밀고 슬금슬금 앞으로 다가가도 아무도 말리는 이가 없어서
나중엔 기자들과 함께 맘 놓고 사진을 찍어 댔다.  

거대 망원렌즈 마운트한 사진기를 두세개씩 걸고 다니는 기자들 틈에선
내 카메라도 똑딱이처럼 가벼워 보였고, 그래서인지 셔터 누르기가 참으로 편안했다.
그 무거운 걸 두세개씩 들고 다니는 기자님들 프로정신에 고개가 절로 숙여 졌다.




물 차고, 페달밟고, 오래 달릴 철인들의 발.
굳은 살이라도 두껍게 덮여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했다.




출발할 시간이 임박해 오자 철인들도 약간 긴장하기 시작하고,




드디어,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출발!




순식간에 멀리 사라져 가는 그들이 오렌지 머리를 가진 돌고래들의 군무처럼 장관을 이뤘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구시가를 산책하고 호텔로 다시 돌아갈 때 즈음
선두 그룹 선수들은 어느 새 바이크복으로 갈아 입고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180 Km.
언뜻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리를 자전거로 달리게 된다.




이 날 오후엔 니스 옆 에즈와 모나코를 갔다 밤 늦게 돌아왔는데,
경기는 그때까지 계속 되고 있었다.
12시 가까운 시각, 거의 마지막 주자일 것 같은 가족들을 기다리는 사람들.




잠시 후, 곧 아이가 걷는 것 보다 느린 걸음으로 아이의 아빠가 결승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의 용기와 그런 그를 위해 여전히 2차선을 막고 끝까지 기다려 준 주체측의 배려가
모두 감동스러워 울컥 눈물이 날 뻔 했다. 

철인삼종 경기는 기록을 위한 스포츠가 아닌 극한을 향해 달리는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다.
한없이 나약한 나는 뭐든 중도에 포기해 버릴 때가 많은데,
앞으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아이를 향해 달려가던 이 마지막 주자의 모습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날 감동스런 완주를 한 모든 철인들에게 다시 한번 기립 박수를 보낸다.

@  Nice, Fr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