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 3] 지성 미안, 오늘만은 나도 첼시 팬

일상 속 여행/유럽 2009. 11. 2. 09:35


축구를 안 봐도 프리미어리그는 남 같지가 않지
. 우리 지성팍과 설기현, 이청용까지 가 있으니
경기가 있는 날에는 괜히 새벽에 눈 한 번 뜨고 ESPN을 켜보니까.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닉 혼비는 소설 <피버 피치>에서 축구광으로 살았던
자신의 소년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어. “잉글랜드 대표팀은 나의 팀이 아니었다.”
이건 그야말로 그가 사랑하는 아스날 팀에 대한 절대적인 애정 표현이지.

 

우리는 월드컵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에는 온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지만,
닉 혼비는 “열두 살짜리 꼬마에게 자신이 사는 곳에서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런던 북부의 팀(아스날)에 비할 때 조국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라고 말했어.
런더너들의 이러한 축구 강박증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는 직접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관람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야.



하지만 런던에 온 여행자들이 표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니까 각 구장에서 마련하는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아
.
런던 남부에 자리한 첼시의 스탬포드 브리지 투어는 경기가 없는 날,
평일 하루 다섯 차례, 주말에는 하루 네 차례 열리고 있어.
맨유 경기장에 가보고 싶지만 런던에서 맨체스터까지는 너무 머니까.

 

투어에 참가하면 듣는 가이드의 첫 인사는 “오늘 하루만은 여러분 모두 첼시의 팬이 되셔야 합니다!”
국민선수 지성팍에게는 미안하지만 존 테리와 드록바, 조 콜이 있는 첼시도 나쁘지는 않지.

 

투어는 기자회견실을 거쳐서 일명 ‘루저(Loser)의 방’으로 통하는 원정구단 로커룸에서 시작돼.
‘루저의 방’이라고 이름이 붙은 건 첼시가 홈 구장에서 60여 경기째 패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야.
화장실 한 칸, 샤워실 한 개로 좀 초라하게 느껴지는 곳이야.
이러니 원정 팀이 적진에서 한 골 넣으면 팬들이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기뻐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홈 구단 로커룸은 널찍한 샤워실에 마사지실, 탕비실, 휴식공간까지 갖춘 게 거의 호텔 수준이야.
여기가 바로 투어의 백미야.
좋아하는 선수의 유니폼이 걸린 로커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거든.
그런 참가자들을 보면서 가이드가 한 마디씩 팁을 줘.
프랭크 램파드는 경기 전 로커에 달린 거울을 보며 몸의 털을 민다든가,
존 테리는 꼭 같은 화장실과 세면대만을 사용한다는 등
선수들의 비밀을 공개하거든






로커룸 구경이 끝나면 이제 드디어 경기장으로 나가볼 차례!
선수들이 입장하는 통로를 따라 걸을 땐 수만 명의 사람들 함성이 들리는 것 같다니까.
실전에서 선수들이 이 통로를 따라 걸을 때 얼마나 심장이 쿵쾅거리겠어.

 

지금은 이탈리아로 떠났지만 내가 좋아했던 주제 무리뉴 감독이 늘 앉아 있던 자리도
가보고 홈 구단 벤치에 앉아서 사진 찍는 건 필수 코스지
.
한 시간여에 걸친 투어는 박물관에서 마무리가 되는데,
박물관은 ‘첼시의 전설’로 통하는 지안프랑코 졸라에 관한 자료부터 무리뉴 감독이 입었던 코트까지
빠짐 없이 정리된 곳이야. 한 마디로 첼시의 역사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지.

 

투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꼭 한 번 들러야 할 곳은 입구에 자리한 메가 스토어야.
진짜 팬이라면 그냥 구경만 하고 지나칠 수 없지.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이 적힌 레플리카나 첼시 로고가 박힌 텀블러,
사진집까지 몽땅 다 내 거라고! 아… 근데 난 첼시 팬이 아니지. 미안, 흥분해서.
하지만 실제 축구장에 가면 누구나 이렇게 흥분하기 마련이라니까.
이번 주말에는 K리그 경기를 꼭 보러 가야겠어~
  

 



Information

스탬포드 브리지 투어 : 런던 남부의 축구 명가 첼시의 스타디움과 로커룸 등을 구경할 수 있는
스탬포드 브리지 투어는 평일 하루 다섯 차례(오전 11시, 오후 12시, 1시, 2시, 3시),
주말 하루 네 차례(오전 11시, 오후 12시, 1시, 2시) 경기 없는 날에 한해 실시된다.
박물관 관람이 포함된 투어의 참가비는 어른 15파운드, 어린이 9파운드로, 투어 홈페이지(shop.chelseafc.co.uk/tours)에서 예약 가능하다. 예약 시에는 예약비 1파운드가 부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