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르 (Montmartre)는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을 이룬 우리나라의 달동네 같은 곳으로
19세기 말 경엔 전망 좋고 주거비 저렴한 이 곳으로 가난한 화가, 시인들이 몰려 들었다.
가난했던 시절의 피카소와 고흐, 위트릴로와 쉬잔, 루소와 브라크 등 수 많은 예술가들이
한번 쯤 이 언덕에 기거하며 영감을 얻고 작품을 남겼다.
달동네이다 보니 올라가는 길이 그리 쉽지만은 않아 걷는 것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약간 고행일 수 있겠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언덕을 편히 오를 수 있는 프티 트랭 (미니기차) 이나 케이블카가 준비되어 있으니 다행.
피카소를 좋아하는 나는 그의 '세탁선'이 있던 몽마르트르에 내심 기대가 많아 부푼 마음으로 언덕을 올랐으나,
현재는 예술가들의 흔적보다 예술가로 위장한 장사치들이 언덕을 장악하고 있어 실망이 무척 컸다.

지하철 역에서 올라가는 것이 익숙하지만, 지하철 타기 싫어 몽빠르나스 역에서 근처 가는 버스를 타고 무작정
오다보니 종점을 찍고 옆 동네에 내려 돌아오게 되었다.
길은 통한다고 결국 걷다보니 사크레 쾨르 성당 지붕이 보인다.
동네는 여느 파리 동네와 달리 아기자기하면서 화려한데,
그런 분위기는 골목마다 주욱 늘어놓은 유명 화가들의 모작들과 포스터들이 한 몫 했다.
줄 지어 선 유혹을 뿌리치고 언덕을 조금 더 오르면 몽마르트르 중심인 테르트르 광장 (Place du Tertre) 이다.
이 곳은 광장이라고 할 만한 여유공간이 거의 없이 노천카페와 초상화 화가들이 장악하고 있다.
장사치 반, 관광객 반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이 곳에서 자칫 호객행위에 말려들면
낯선 얼굴이 그려진 거액의 초상화를 떠 안을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내가 간 때가 하필이면 단체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간이었는지 사람들에 치이다 보니
세탁선이고 뭐고 빨리 이 언덕을 빠져 나가야 겠단 생각 뿐, 짜증이 몰려 왔다.
급히 광장을 빠져 나와 한적한 골목으로 접어들자 달리 미술관 앞에서 한 여자가
그 소란함을 피해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잔뜩 찌푸리고 있던 미간이 자연스레 펴지며 여유없이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 부끄러워 졌다.
오래 전 이 곳이 지금은 대가가 된 화가들에게 가난했던 시절의 안식처가 돼 주었듯이,
장사치로만 보이는 그들도 언젠가 바가지 초상화가 아닌 그들만의 작품으로 갤러리에 당당히 서게 될지
모를 일인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솜씨 좋은 화가에게 초상화 한 점 맡겨볼 걸 그랬나 슬쩍 후회가 된다.
예술가들의 언덕은 어떠해야 한다는 틀에 박힌 기대가 실망을 자초한 일이 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여유를 찾고 걷다 어느 골목의 자그만 노천카페가 마련해 놓은 몽마르트르 최고의 명당자리를 발견했다.
언덕 아래까지 탁 트인 골목 너머로 황금빛 앵발리드 지붕과 에펠탑이 보이고,
그 풍경이 서서히 노을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한 연인이 와인을 나누며 지켜 보고 있었다.
구지 유명한 예술가들의 향취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몽마르트르는 여전히 예술가들의 언덕이었다.
@ Montmartr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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