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파리 여행 3_발자르(Balzar)여, 영원하라!

일상 속 여행/유럽 2009. 10. 21. 13:18

파리에는 오래되고 유명한 카페들이 많다.
햇살 좋은 오후에 사람들은 길가로 향한 의자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차나 음료를 마신다.
물론 시끌벅적한 수다도 빼 놓을 수 없는 것. 

그 중 생 제르맹 거리에 있는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 와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는 거의 모든 파리정보 책에 실려 있을 만큼 유명하다.
때문에 이 두 곳엔 헤밍웨이, 사르트르, 보부아르 등 프랑스의 지성들이 머문 흔적을
찾기 위한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예술계와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수 많은 파리지앵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랜 라이벌 관계인 두 카페가 나란히 있는 모습 - 마주 보지는 않고 - 이 재밌다.
시간도 적절하고 나도 역사적인 카페에 앉아 '햇살 쬐며 사람들 구경하기' 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내겐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었다. 

파리에 오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얼마 전, 'Paris to the moon'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애덤 고프닉이라는 글 잘 쓰는 뉴요커 아저씨가 파리에 10년간 산 얘기를 쓴 책으로
그의 훌륭한 글 솜씨는 파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파리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책을 거의 다 읽어 갈 때 쯤  파리행 티켓을 손에 넣었으니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책에 파리의 보석같은 브라스리 '발자르(Balzar)'에 대한 일화가 나오는데,
그것을 읽고 파리에서의 첫 만찬은 꼭 발자르에서 갖고 싶었다. 

발자르는 100년 넘게 가족들끼리 운영하는 브라스리로 애덤 고프닉의 표현을 빌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 그 곳을 혼이 담긴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좋은 식당'이라고 했다. 

어느 날 이 보석같은 브라스리가 파리 식당의 디즈니랜드화를 꿈꾸는 거대 자본 플로그룹에 인수되자
발자르의 오랜 단골들이 규격화 된 맛과 사무적인 친절로 부터 발자르를 지키기 위해
사장과 맞설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들만의 멋진 시위로 발자르를 사수하게 되었다는 얘기는
흥미진진하면서도 마음 한켠의 따뜻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정말 아름다운 한편의 논픽션 드라마였다.

(서점에 가게 되면 꼭 한번 찾아 읽어 보시길!)

 

소르본 대학 근처에 있는 발자르를 찾는 일은 그닥 어렵지 않았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바깥 쪽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나이 많고 친절한 웨이터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파리의 브라스리는 테이블에 의자를 마주보게 놓지 않고 길가를 향해 나란히 놓는게 특징.



곧 책에서 본 대로 친절하면서 연륜이 느껴지는 나이 든 웨이터가 전해 준 메뉴판을 열어 본 나는 잠시 당황했다.
모두 프랑스어로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허기를 달랠 요리는 없고 모두 마실 것과 단 것 뿐이었다.
장사가 안되서 메뉴를 바꿨나 걱정하며 고른 것은 샐러드와 간단한 디저트가 묶여 있는 세트 메뉴.하지만, 그 메뉴는 시킬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있었고, 결국 타는 목을 축일 맥주 한잔만 덩그러니 시켜야 했다. 

오, 이런!  꼬르륵 소리가 요동치는 뱃속으로 찌릿한 맥주 한잔이나 밀어 넣어야 하다니!
입도 대기 전에 뱃 속이 부글거린다.



빨리 잔을 비우고 다른 카페로 가 빈 배를 채우자고 생각하며 원망스런 마음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많은 사람들이 바깥하고 다른 분위기로 그들만의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다시 웨이터를 불러 물어보니 '식사를 하려면 안으로 들어 와야지!' 한다.

노천에선 음료만, 식사는 안에서! 라는 룰을 몰랐던 것이다.
메뉴판도 안쪽과 바깥쪽이 따로 있었다.



서둘러 안쪽에 다시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재촉했다.
이미 메뉴판 읽기에 애 먹는 모습을 본 터라 이번엔 영문 메뉴판으로 준비해 주는 센스쟁이 웨이터 아저씨.



 
첫번째 요리로 훈제 청어와 토마토 샐러드를 시켰다.
Smoked Herring with Potatoes salad 

청어가 비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훈제향이 살짝 느껴지면서 부드러웠고,
양파를 함께 곁들이면 약간 느끼했던 맛이 개운해 진다. 무슨 소스인지 감자 샐러드도 달큰한 것이 맛있다.
양이 많아서 남긴 청어 한토막이 아직도 눈에 밟힌다.




본 요리는 medium 으로 익힌 후추 소스 스테이크
Beef Steak in Pepper Sauce

주방으로 부터 타원형 접시에 담겨져 나온 스테이크는 손님 테이블 앞에서 웨이터에 의해 
다시 새 원형접시로 옮겨지는 정성스런 발자르만의 전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 정성스러움 때문인지 촉촉한 육질의 스테이크를 살짝 매콤한 소스에 묻혀 먹는 맛이 일품이었고,

 


스테이크와 함께 나온 기가막힌 상태의 감자튀김도 최고 중에 최고였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혼자 먹을 수 없는 양이 었는데 마지막 남은 고기 한점으로 바닥의 후추 소스를 싹싹 쓸어내며 시위로 발자르를 지켜 낸 '발자르의 친구들' 모임에 여행경비를 모두 털어 기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 때 그들처럼 나도 외쳐본다.
지치고 외로운 여행자에게 행복한 포만감을 안겨 준 '발자르여, 영원하라!'

 

@ Balzar,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