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가 되고 싶었던 아저씨, 히로시
오키나와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많이 마주친 오키나와 사람은 바로 히로시라는 아저씨다.
며칠 동안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는데 그곳의 주인장이 바로 히로시.
뜨거운 열대지방에서 어부로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는 젊은 시절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준비들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일본 이곳 저곳을
돌아보는 여정에 올랐다. 그 와중에 오키나와에 들르게 되었는데, 그때 느꼈단다.
‘뭐야, 꼭 해외로 떠나지 않아도 되잖아!’
그리고 오키나와에 바로 정착해 결혼도 하고 게스트하우스도 열어서 잘 살고 있다.
오키나와는 이렇게 ‘자유’를 찾아 도시에서 건너와 정착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의 뜨뜻미지근한 기후와 사시사철 푸른 자연, 그리고 섬 전체에 퍼져있는 음악적 영감 덕분이
아닐까 한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하자. 그의 성, 한자를 풀이하자면,(그렇게 들었을 뿐, 여기 옮겨 적진 못하겠다.)
바로 고기를 굽는 사람이다. 조상들이 대대로 고기를 굽거나 요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하는데,
주방에서 보여주는 그의 요리 솜씨는 와우~ 하는 감탄사를 자아낸다.
(아, 생각하니 또 먹고 싶군.. 쓰읍.)

게스트하우스의 1층에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가게가 있는데 히로시는 저녁이면 그곳에서 요리를 하고
서빙을 하고, 손님들과 수다를 떨었다.
밤마다 그곳에 내려가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오키나와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히로시와 입으로, 손으로, 발로(툭툭) 대화를 하면서 얻는 큰 정보 중 하나는 ‘얀바루’에 대한 것이었다.
얀바루는 오키나와 북부지방에 자리잡은 아열대성 숲으로 오키나와만의 고유한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히로시는 그곳을 지켜내는 환경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얀바루라는 곳, 함 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키나와에서의 마지막 하루의 미션을 ‘Go! Go! 얀바루’로 잡았으니.
가자~ ‘얀바루’로!
얀바루를 가기 위해 여행책을 쓱 흝어보니 ‘아하 마을(뭔가 80년대 팝가수 생각이 나는 이름이다.)’
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엔 오키나와의 전통가옥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고 하니,
왠지 푸근한 마음이 되어 그곳을 꼭 들리고 싶었다.
북쪽으로 달리고 달려 몇 개의 산을 지나 마치 우리나라의 무우 밭처럼, 길~게 펼쳐진 파인애플 밭을
룰루랄라 달려 막상 그곳에 도착해 보니 전통가옥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런데, ‘아하 마을’을 찾다찾다 출출하여 들른 ‘아하 마을이 있었을 법한’ 곳의 오래된 슈퍼마켓에서, 아뿔싸! 바로 ‘아하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계산대 뒤에서, 그것도 한 폭의 그림으로.
“한 십 년 전의 풍경이에요. 누가 아직도 그런 집에 살겠어요. 호호호~”
이런 구닥다리 여행 책… T-T
낙담하여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으려니 슈퍼마켓 아주머니는 측은한 듯 조언을 해주었다.
“얀바루를 알고 싶다면 머지 않은 곳에 ‘얀바루를 배우는 숲’이라는 곳이 있어~ 이름에 얀바루가 들어가
있으니 뭔가 있지 않겠어? 호호호~”
아주머니의 호들갑스런 웃음소리에 뭔가 스멀스멀 불신의 느낌이 떠올랐으나, 여기까지 왔는데 뭔가는
봐야 하지 않을까 해서 아주머니가 안내해준 길을 따라 달렸다.

얀바루 속의 고쿠센
또다시 양 옆으로 커다란 산들이 펼쳐지는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니 아주머니 말대로
‘얀바루를 배우는 숲’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샛길로 들어가 보니 좀 그럴싸한 건물이 나타났다.
‘오~ 여기는 볼만하겠는걸?’
그런데, 그런데! 설명해 주시는 분과 함께 몇 명이서 팀을 짜서 가야 하는 이 코스,
우리의 동행은 어느 고등학교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이렇게 설명을 하면
“미소년, 미소녀들과! 호강했군!”
이런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된 게 이 고등학생들,
일본 드라마 <고쿠센>에 나오는 불량학생들 닮았다. 죄다…
팀이 짜여진 순간부터 우리 차를 툭툭 발로 차보고, 안내하는 분의 말에 아랑곳 없이 우리를 보며
불량스런 말투로 수다를 떤다.
“이거… 이 숲에서 애들한테 끌려가 맞는 거 아냐?” T-T
얀바루 여행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그 고등학생들이 무서워서 냅다 튀어버린 것이다.
애들이 뒤따라 올까 봐 뒤를 흘낏흘낏 보며 잰걸음으로 숲을 빠져 나와 차를 타고 내달렸다.
얀바루에 대한 이야기는 어이없지만 여기까지다. 남쪽의 나하로부터 워낙 멀리 떨어진 곳이라
이런 모험을 하고 나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그래도 다시 나하를 향해 오는 차에서 지나온 바다는 아름다웠고,
그 바다 곁에 서있는 작은 우체국은 뭔가 낭만적이었다. 다만 그곳에 멈춰서 낭만을 즐기기에는..
너무 배가 고팠다.
나하, 최후의 만찬
오키나와에는 나름 맛집이 많다. 물론 도쿄나 오사카 같은 곳에서 맛볼 수 있는 햄버거나
덮밥 체인점들도 존재하지만, 이곳에서 특별히 맛볼 수 있는 음식이라면, 바로 다양한 쇠고기 요리들이다. 오키나와에서는 꽤 품질 좋은 쇠고기를 맛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철판구이집이 꽤 많은데, 요리사가 쇠고기와 해물, 야채 등을 바로 앞 철판 위에서
조리를 해준다.
나하거리에서 꽤 큰 규모의 철판구이집에서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그래..
오늘 밤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떠나야 한다. T-T
이렇게 내가 매우 감상적인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내 앞에서 요리사 아저씨는 불쇼를 하고 있다.
고기를 굽고, 야채를 굽고, 해물을 굽고, 뒤집고, 뒤집고, 뒤집고...
어느새 요리는 완성, 각자의 접시 위에 완성된 요리들을 덜어준다.
문득 생각나 일행과 상의를 했다.
“여기 팁 줘야 하나?”
“아니 안 주는 거래. 근데 아저씨가 이 말 들으면 팁 줄 거라 생각하고 기대하겠는데?”
“에이~ 아저씨 우리말 모를 건데?”
“… 팁은 영어야….”
순간 아차 싶어서 아저씨 쪽으로 시선을 향했을 때, 아까보다 훨씬 정성스레 요리를 마무리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저씨 죄송한데, 팁은 없어요… 흑.’
대신 돌아가면 현지 맞춤형 무선인터넷 서비스의 맛집 정보 코너에 이곳을 소개해 드릴게요…
라고 생각은 했으나, 여행지의 추억은 그곳에 남겨놓고 쿨하게 떠나야지! 라는 게으른 변명을 남기며
난 아직껏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팁이라도 드리고 올 걸…
사요나라~ 오키나와
이젠,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회사일이 고단할 때,
훌쩍 떠나고 싶은 곳으로 오키나와가 랭킹 3위 안에 들어있다.
그곳에서 히로시 아저씨처럼 어부를 꿈꿀까, 아니면 소메노처럼 노래를 부르며 유랑을 할까.
이런 얘기를 루비 매니저님에게 하면,
오키나와 가서 어떻게 하면 로밍 서비스를 잘 할 수 있을까를 꿈꾸라 하시겠지. ㅋ
기다려라~ 오키나와! 신혼여행으로 가 주지! (도대체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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