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로밍 사용후기 당선작] 기러기 아빠와 로밍

일상 속 여행 2008. 3. 1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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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T로밍 이용후기 당선작으로 "최수묵"님의 이야기 입니다.
로밍과 함께한 최수묵 님의 소중한 추억을 감상해보세요~

 

자유의 여신상이 눈에 들어왔다. 태평양을 건너 12시간 넘게 날아온 비행기는 서서히 뉴욕 하늘 위를 선회했다. 잠시 후면 그리던 기러기 떼를 만나는 순간이다.

홀로 그림을 그려본다. 출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는 데 대략 40~50. 요즘 들어서는 테러를 염려한 때문에 입국 수속이 더뎌지고 있으니 1시간이 넘게 걸릴 수도 있다. 게다가 미국에서 맛보기 힘든 한국의 전통식품들 때문에 짐 검사라도 받게 된다면 10분은 더 걸릴 수도 있다. 대략 60~70분의 절차가 끝나고 출구로 나서면 멋진 세리모니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잘 자라고 있는 딸내미들과 멋진 포옹을 하겠지. 온통 시선이 집중되도록….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출구에서 사람이 나올 때마다 까치발을 하며 온통 신경을 곤두세운다는 것을. 또 행여 다른 출구로 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는 것을. 그만큼 만남의 기쁨과 설렘이 큰 것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비행기가 조금 일찍 도착하기도 OT지만, 입국수속과 짐 찾는 시간이 불과 30분도 걸리지 않아 공항 보세구역을 금세 빠져 나온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멋진 세리모니를 해 줄 기러기 떼는 아직 공항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공항도착과 입국 수속 등에 넉넉잡아 1시간 정도를 감안한 기러기 떼가 약간의 주차료라도 절약해보려는 심산에 출발을 늦추었던 것이다.

미리 마중 나와 있을 줄 알고 카트를 빌리지 않은 채 무거운 짐 덩어리 3개를 맨손으로 낑낑대며 끌고 나왔는데, 아무도 없다니….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주변을 몇 번이고 두리번거렸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래, 잠시 기다려 보자. 길어야 10분일 텐데. 오랜만에 미국 사람들 구경이나 해보지 뭐’. 그러나 이런 여유는 채 1분도 가지 못했다. ‘혹시 차를 몰고 오다가….’ 가족에 대한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뉴욕이 어떤 곳인가. 최근 제3세계 이민들이 밀어닥치면서 교통질서가 한국보다 더 어지러워진 곳 아닌가. 끼어들기, 과속, 난폭운전이 한국의 90년대 초반 수준을 능가(?)하는 도시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수록 불안감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1분이 10, 2분이 30분처럼 느껴졌다. 온갖 불길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때 휴대전화기로 통화하는 사람이 옆을 지나며 하는 말이 들려왔다. “, 난데 지금 도착했다고?” 보세구역 안에서 입국수속을 밟고 있는 누군가와 통화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바로 같으니….’

잠시 혼미해졌던 머리를 흔들며 나는 옷가방에 처박혀 있던 휴대폰을 꺼냈다. 까맣게 빛나는 휴대전화기가 그렇게 반가워 보인 때는 없었다. 전원을 켠 뒤 시스템 제어판->시스템 선택->A밴드 국제 로밍을 차례로 눌렀다. 재부팅 된 뒤 선명하게 떠오르는 현지 시간. 드디어 가족과 통화할 수 있는 이 연결된 것이다.

기러기 데와 통화하며 난 큰소리를 쳤다. “, 난데, 벌써 입국수속 다 끝났어!”

기거리 떼가 부리나케 공항으로 달려온 건 그로부터 20여분 뒤였다. 전화하지 않았다면 주차료를 아끼기 위해 30~40분 뒤에나 나오려 했다는 이야기였다. 하여튼 기러기 데가 뒤늦게 공항에 나오는 바람에 비싼 주차료는 내지 않았다. 그리고 6개월 뒤인 지난 6월 뉴욕 공항. 이번엔 입국수속을 마친 후 곧바로 휴대 전화기를 켰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짐 찾으러 가고 있으니, 딸내미들과 출발하세요~안전하게 방어 운전하시고, 요즘 뉴욕 사람들 너무 운전이 거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