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눈에 알아보는 월드컵의 역사

T로밍 이벤트 2010. 7. 19. 18:00



최초의 월드컵은 193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에 우루과이에서 열렸죠. 1932년 올림픽이 미국 LA에서 열렸는데 당시에도 미국에서는 미식축구가 인기가 높았지 축구는 인기가 매우 낮았습니다. 따라서 축구는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제외되었죠. 이에 따라 당시 피파 회장이던 줄리메가 월드컵을 개최하기로 합니다. 그 때문에 월드컵은 지금도 '줄리메 컵'이라고 불리우기도 하지요. 올림픽의 탄생에 쿠베르탱이 있었다면 월드컵의 아버지는 줄리메인 것입니다.

하지만 제 1회 대회는 우루과이에서 열리기로 한 탓에 유럽국가들이 참석하기엔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우루과이가 모든 체류비와 교통비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겨우 유럽에서 4팀이 참여하여 총 13개 국가가 제 1회 월드컵에 출전합니다. 지금의 코파 아메리카 컵보다도 작은 규모였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서의 축구 인기가 낮아 월드컵이 탄생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제 1회 월드컵에 미국도 출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1회 월드컵의 우승국은 개최국인 우루과이가 됩니다.

2회, 3회 월드컵은 반대로 유럽에서 열리게 되어 남미팀들이 대거 불참하였고, 1942년과 46년 대회는 제2차 세계 대전 때문에 취소되었으며, 1950년 4회 월드컵이 브라질에서 열리고, 54년엔 우리나라도 출전하여 쓴 맛을 본 스위스 월드컵이 열리게 됩니다.

사실 월드컵이 지금처럼 세계인의 축제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 남미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가난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출전하기엔 부담이 컸고, 사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과 실력은 유럽과 남미에 크게 뒤떨어졌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둘수가 없었습니다. 교통이 발달하고, TV를 통한 월드컵 시청이 자연스러워지고, 월드컵을 둘러싼 기업의 마케팅이 활발해진 최근 2~30년에 월드컵의 규모와 인기가 비례하여 성장하였죠. 현대 스포츠의 발달의 이면에는 기업들의 후원과 마케팅(특히 나이키 vs 아디다스로 대변되는)이 절대 빠질 수는 없으니까요.

향후 월드컵의 인기는 거대자본의 일본과 16억 인구의 중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아시아의 축구 실력이 타 대륙에 비해 매우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피파에서 지속적으로 4.5장이나 되는 티켓을 배분하는 것은 일본과 중국을 월드컵 본선 무대로 끌어들임으로써 새로운 마케팅의 기회를 확보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사실 그 덕을 톡톡히 본 것은 그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였던 것이죠. ^^

사실 축구를 오랫동안 보아온 사람의 입장에서 일본 혼다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타 아시안 플레이어의 클래스를 뛰어넘은 것이니까요. 일본에서 그런 선수가 나왔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인 사건입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클래스가 현재 박지성이 있다면, 혼다는 박지성과 다른 유형의 선수로 클래스에 오를 수 있는 선수라 봅니다. 그런 선수가 일본인이라니, 세계 유수의 클럽에서 오퍼가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죠. (특히 AC밀란이나 아스날 같이 가난한 클럽에서 말이죠) 갑자기 혼다 얘기를 꺼낸 것은 일본 축구, 그리고 중국 축구(최근 중국의 히딩크가 나와 실력적으로 크게 늘었죠)가 세계를 향해 나가고 있다는 것.. 바꿔 말하면 4년 후, 그리고 8년 후 월드컵의 규모는 현재와 비길 수 없이 확대될 것이란 점입니다.


 * 위의 포스트는 2010년 6월 2010 남아공 이벤트에 응모하신 '정미주'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