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박치기

T로밍 이벤트 2010. 6. 15. 09:32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당연히 2002년 월드컵에 대해 얘기할 거라고 생각할까 봐…  2006년 독일 월드컵에 대해 얘기해보련다. 남들이 하는 건 왠지 유니크하지 않으니까, 훗.

프랑스 VS 이탈리아 경기 중 연정을 숨기지 못하고 마테라치의 가슴에 파고드는 지네딘 지단.
 “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가, 가란 말이야…”



사건은 2006년 7월 10일, 한국시간으로 오전 3시 경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벌어진 프랑스와 이탈리아와의 2006 독일월드컵 결승전에서였다. '레 블뢰 군단' 프랑스의 플레이메이커 지네딘 지단이 연장 후반 5분, 갑자기 사무치는 연정을 숨기지 못하고 상대 선수의 가슴에 파고든 것.

이 날이 자신의 A매치 은퇴 경기였던 지단은, 자신을 집중 마크하던 이탈리아 수비수 마테라치와 실랑이를 벌이다 그의 가슴을 들이받고 레드 카드와 함께 쓸쓸히 마지막 무대에서 뒤안길로 퇴장하게 된 것이다. 지단이 마테라치의 가슴을 들이 받는 순간 영화에서처럼 잠시 세상이 PAUSE 버튼이 눌린 듯 했고 사람들은 기겁했다.

건너오지 못할 강을 건너 가버리신 형님… '이게 정말 끝인 거니?' '메리야스'도 역시 삼선이 최고.


분을 삯이지 못한 형님은 결국 프랑스가 이탈리아에 3-5로 패배하는 것을 라커룸에서 지켜봐야 했다. 운도 지지리도 없는 트레제게와 희망의 끈 앙리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팀 주축이 빠진 경기는 상대가 이탈리아인 만큼 허점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선수 한 명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절감할 때가 많다. 특히 축구가 그렇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잉글랜드가 숙적 아르헨티나를 맞아 16강에서 혈전을 벌일 때, 상대팀 선수의 파울에 보복행위를 하다가 빨간 딱지를 받고 퇴장 당한 우리의 백암 선생(데이비드 베컴). 베컴이 빠진 후 균형이 깨진 잉글랜드 팀은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르헨티나에 패하고 말았다.

그 당시 잉글랜드의 여론은 가히… 그 때의 백암 선생의 심정은 스티브 유라면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 후 스포츠 브랜드 모델로 나선 베컴이 “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카피 아래 직접 그림까지 그렸겠는가.   
 
그리고 그 옛날 ‘울트라니폰’의 절대자였던 나카타가 국대로 뛰고 있을 때는 일본도 지금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카메론과의 경기에서 생각지도 못한 1:0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월드컵 본선 전까지의 평가전에서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졌던 무거운 분위기. 그건 단순히 분위기가 아니라 꽤 탄탄한 중원에 비해 골대 앞에서의 결정력이 떨어지는 일본의 현실을 보여준 증거였다. 순스케와 혼다가 있잖아? 라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박지성 대로도 모자라 광화문을 점령한 2006년의 박지성.
빌딩 5~6층을 훌쩍 넘는 대형 광고판의 박지성의 규모는 실로 한국 대표팀 내에서의 그의 존재감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보자. “박지성 없었으면 한국 어쩔 뻔 했냐”는 말을 하게 할 정도로 현재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나라의 국보인 박지성. 정말, 오죽하면, 박지성 대로까지 생겼겠는가 말이다. 한국 팀과 경기를 앞둔 모든 상대팀 감독과 선수들은 다들 ‘지성팍’을 경계하지만 이번 그리스전에서도 결국 박지성을 묶지 못했다. 전반에는 다소 압박 당하는 듯 했지만 잠깐의 빈틈만 있으면 그 공간을 파고드는 게 똑똑한 박지성이니까 말이다.

물론 박지성을 제외하면, 세대교체 이후 선수 간 호흡이 가장 잘 맞는 시기라고 해도 아직 불안한 건 사실이다. 기성용과 이청룡, 박주영 같은 발군의 실력자들이 박지성의 노련미를 배우려면 또 그 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프리미어리그에서의 경험으로 패널티 박스 안에서 골 연결까지 혼자 힘으로 마무리 지은 이번 그리스전을 보면 더욱 말이다…

아. 나 지금 떨고 있니. 아르헨티나전을 불과 3일 앞둔 지금 이 무모한(?) 자신감은 무어란 말이냐. ‘한 번 해볼 만 하다’는 생각, 박지성이 있으니까 가능하다는 생각. 지금 내가 바라는 게 나만의 생각은 아니겠쥐…  

설령 패하는 것이 정해진 우리 운명이라고 해도 이 해볼 만 하다는 자신감이 있어 목요일이 기다려진다. 준비됐는가, 치맥은 필수…




 * 위의 포스트는 2010년 6월 2010 남아공 이벤트에 응모하신 '김수아'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