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어떤 아침은 파리를 사랑했던 그리고, 파리 사람들이 사랑했던 많은 예술인들이 묻혀있는
몽빠르나스 묘지를 산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전설의 고향을 보며 자란 내게 '묘지에서 산책한다'라는 표현은 참 어색하지만
이름이 익숙한 고인들의 무덤을 찾으며 새 소리만 고요하게 울려 퍼지던
좁은 길 들을 걷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묘지 입구에 들어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 거리는 내게 관리인이 묘지 지도를 건내 줬다.
어떤 이들이 이 곳에 있는지 위치와 이름과 직업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우선 가장 가깝고 제일 보고 싶었던 묘지가 있는 입구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들의 글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꽃 대신 놓아 둔 편지와 쪽지들이
다른 묘지에 놓여있는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세기의 지성 커플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자유연애를 인정한 계약커플 이면서 지적 반려자로 평생을 함께 하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 곳에 함께 묻혔다.
철학과 사상에 대해 늘 대화하고 질투하고 경쟁했던 그들은 연인이 아닌 '동무'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것은 다른묘지와 달리 공통 성을 갖지 않고 묘비에 나란히 새겨진 그들의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묘비 밑에서도 여전히 깊이 있는 수다를 떨고 있을
그들의 특별한 사랑에 박수를 보낸다.

가족묘가 많던 몽빠르나스 묘지에 새로운 이웃이 들어오기도 한다.
꽃다발 리본에 적힌 가족들의 인사에 괜히 눈시울이 붉어 진다.
좋은 곳에서 편안히 쉬시길...


다음으로 사진가 만 레이의 묘지를 찾아 헤매다 결국 실패하고,
파리에 와서 망자들만 찾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작가 보들레르와 모파상,
조각가 세자르,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 등 만나고 싶던 이들에게 한꺼번에 짧은 안부인사를 보냈다.

묘지 정문으로 나오니 바로 앞 에드가 키네 시장 (Marche Edgar Quinet) 이 오픈 준비로 한창이다.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시장보다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좁은 도로 하나 사이로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아침이다.
@ Montparnass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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