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자 왠지 초조해 졌다.
볼 것들을 다 보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아직도 먹지 못한 달팽이가 문제!
한국서 가끔 부페에 가면 먹을 기회가 분명 있었는데, 막상 집게로 집으려고 하면 달팽이의
말랑하고 귀여운 더듬이 - 손으로 톡 치면 쏙 들어가는 - 가 떠올라 먹기를 거부해 왔으면서.
게다가 프랑스 대표 음식이 어디 달팽이 뿐인가! 하지만, 꼭 먹고 말겠다는 촌스럽고 강한 의지는 꺽이지 않았다.
그래서, 작정하고 찾아간 곳이 St. Michell 근처에 있는 파리의 맛집 골목.
과연 골목 입구부터 북적대는 시장통 처럼 카페들이 늘어 서 있었다. 한 두 바퀴 돌며 몇몇 골목들을 탐색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Cafe de Paris 에 자리를 잡았다.

이유는 늘 그렇 듯 사람 많고, 나이든 웨이터가 손님을 맞으며, 무척 활기차 보여서.
하지만, 자리에 앉기 전에 빼 먹지 말아야 할 질문, '달팽이 있어요?'

달팽이가 있었다.
도로로 향해 놓인 바깥 1인석에 재빨리 자리를 잡았다. 왠일인지 파리 여행 땐 늘 허기가 졌다.
그리고, 테이블을 세팅해 주고 바게뜨를 주는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예감이 좋았다.

주문한 것은 보르고뉴 달팽이 6마리.
Les 6 escargots de Bourgogne.
잠시 뒤 구멍 뚫린 귀여운 오븐 용기에 허브갈릭 버터에 몸을 적신 달팽이 여섯마리가 담겨 나왔다.
고소한 향을 달고.
좀 더 달팽이스럽게 껍질 속에 담겨 있었음 좋았을 텐데 아쉬워하며 한마리를 들어 한 입에 쏙 넣는 순간,
오! 이런 맛이군.

다른 집 달팽이를 먹어 본 적 없어 비교가 불가하지만, '맛있다'의 한 등급 위 쯤.
구멍에 가득 채워진 따끈한 허브갈릭 버터에 부드러운 바게뜨 속살을 찍어 먹으니 그 또한 입에 쩍 붙는다.
비로소 낭만 파리 여행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본 요리는 소고기 카르파쵸와 프렌치 프라이.
Carpaccio de boeuf, frites ou salade
카르파쵸는 생소고기를 아주 얇게 잘라 올리브 오일 소스와 함께 먹는 요리다.
1950년대에 베네치아에서 빈혈이 있는 백작부인에게 생고기를 많이 섭취하라는 의사의 처방이 내려져
그것을 들은 유명 요리사 Giuseppe 가 만들어 냈다.
이 음식을 만들 당시 베네치아에서 Vittore Carpaccio 라는 화가의 그림 전시회가 열렸고,
그 화가가 밝은 빨간색의 색조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는데서 힌트를 얻어 요리의 이름이 카르파쵸(Carpaccio) 가 되었다고.
(네이버 지식 in 참조)
평소에 육회를 먹지 않지만, 나중을 위해 맛을 기억해 두려고 일부러 시켜 봤는데,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얇고 담백해서 두 점 정도는 먹을 만 했다.

다닥다닥 붙어 앉은 사람들.

식사시간 내내 정겨운 수다가 오고 가고
그 틈에서 여행의 반을 보낸 나는 조금씩 쓸쓸해 지기 시작했다.
반 이상 남긴 카르파쵸 접시를 보니 더욱 그랬다.
역시 맛 좋은 음식은 나눠 먹어야 제 맛!
@ Cafe de Paris,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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